[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하늘에서 내려온 사랑, 예수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알아보았다.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수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처형된 역사적 인물,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제자들에게 자신을 살아 계신 분으로 보여준 전대미문의 유일회적 인물, 겁쟁이었던 제자들이 그로 말미암아 용감한 사도로 변신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살아 생전에 사랑을 살았고, 사랑으로 살아가도록 가르치신 분이셨다. 어마어마한 권리를 주장하고, 어떤 권력자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았고, 어떤 보잘것없는 사람에게도 오만하지 않았던 분으로, 정처없이 떠돌며 하느님 말씀과 하느님 사랑을 전파했던 분, 그래서 그분을 두고 하느님의 아들, 주님, 메시아(그리스도) 등 수많은 명칭을 붙였던 사실도 보았다. 오직 하느님 사랑에 사로잡혀 하느님과 이웃, 인간을 위한 일이라면 아무것도 사양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까지 종노릇을 기꺼이 하셨다. "나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 누구보다 서민들의 자질구레한 걱정거리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그들을 이해했다. 사마리아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던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사마리아 여인과도 서슴없이 대화를 나눴다. 부자를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소외되면 소외될수록,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어려운 사람들의 곤궁한 처지를 이해하고 기꺼이 그들 친구로 나섰다. 예수님 주변에는 부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셨다. 가난한 사람의 행복을 선언하셨다. 가난한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고, 아니 가난한 사람도 행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님 말씀과 뜻을 전했던 대중 설교가였다. 예수님이 가르치는 방식은 상당히 독특했다. 대중적이었고, 구체적이었으며, 직접적이고 서민적이었다. 말씀에 권위가 있었고 듣는 사람마다 그 가르침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컨대 예수님은 비유로 가르친 적이 많았다. 예수님의 비유 소재들은 지극히 서민적이고 대중적이었다.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소중한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함축적이었으며 날카롭기까지 했다. 세금을 바쳐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또는 무슨 권한으로 가르치느냐는 함정 있는 질문을 받고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 정곡을 찌르며 해결했다.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에도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화법을 사용하셨다.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는 언덕에서 강도 맞은 사람을 유다인과 사제는 보고도 멀리 반대쪽으로 피해간다. 레위인 역시 다른 길로 피해간다. 어떤 사마리아인이 그를 보고 가엾은 생각이 들어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상처를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에 데려가 비용을 지불하고 더 들어갈 비용의 지불까지 약속했다. 어떤 한국 사람이 조직폭력배를 만나 얻어 터져 반쯤 죽어가는 것을 보고, 한국의 고관이나 공무원, 종교인도 다 피해 지나갔는데, 어떤 일본 상인 한 사람이 그를 보고 가엾은 생각이 들어 응급처치를 한 다음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부탁하고 더 들어갈 비용 지불을 보증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강도맞은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인가? 1.사제, 2.레위인, 3.착한 사마리아사람. 답이 아주 쉽게 나온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그 착한 사마리아 사람에게 이웃은 누구일까? 강도 맞은 사람일까? 맞다. 그러면 아파트 505호에 사는 여러분에게 이웃은 누구인가? 1.506호에 사는 사람, 2.605호에 사는 사람, 3.나에게 사랑을 베풀어준 사람들, 부모님, 아껴주는 친구들, 이제는 나이 들어 병들고 돌볼 사람 없는 그들…. 그렇다면 그들에게 이웃은 누구일까? 우리 인간이 악마에게 얻어 터져 하느님 아버지 집으로 갈 수 없게 됐는데 우리를 가엾게 여겨 상처를 치유해주고 병원으로 데려가 주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아니 그 이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들과 교회는 그분이 하느님이 아니고 다른 분일 수 없다는 것을 목숨바쳐 주장했다. 하느님이 아니고서야 죽은 분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셨으니 하느님이요, 하느님의 아드님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분은 하느님의 외아들, 그리스도, 성자로 고백됐고, 그리스도교 핵심 신앙이 됐다. 우리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라고 고백됐다. 이 강생의 신비는 참으로 놀랍다. 비천한 인간을 위해 인간이 되실 수 있을까? 그건 사랑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다. 사랑을 해 본 사람만이 그 심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그 자체가 신비다. 사랑은 논리를 넘어 이익을 따지지 않고, 높고 낮음도 없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사랑이셨다.
정리=박정연 기자 cecil@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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