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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 - 생존의 비결

윤 베드로 2015. 7. 2. 12:52

유다인 - 생존의 비결

 

1. 토라

 

유다인은 옷과 토라에 잉크가 묻었을 때

              율법 책에 묻은 잉크부터 먼저 지운다고 한다.

또 길을 가다가 책과 돈을 동시에 떨어뜨렸다면 돈보다 책을 먼저 집고,

            부모와 랍비가 똑같이 위급하다면 랍비를 먼저 구한다고 한다.

랍비 벤 자카이는 토라를 배우는 것만이 유다인이 살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예루살렘 성전을 구할 수 없다 하더라도

              토라와 그것을 가리키는 랍비는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토라는 유다인들의 신앙과 지혜의 원천으로,

           역사의 거칠고 험난한 파도 속에서도 유다인을 살아남게 한

            힘이며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토라란 무엇인가?

유다인들은 처음 다섯권의 성서인 모세오경을

                히브리어로 토라(Torah)라 불렀다.

실상 이 책들 안에는 성서 법조문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거의 수록되어 있다.

토라는 선택된 백성의 율법으로서 그들 모두에게 살아있는 권위였으며,

            법률상으로도 꼭 지켜야 할 의무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토라는 유다인들과 적대적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 사람들까지도

           하느님의 율법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바빌론 유배 이후 유다인들은 모세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선사하신

          이 토라에 철저히 순명할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께서 율법의 절대적 권위에

           정면으로 맞섬으로써 토라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토라의 핵심적 계명이라할 수 있는 안식일법(마태 12,1-14 참조)과

           정결례법(마르 7,1-23 참조)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복음서 곳곳에서 유다교의 근본 질서를 뒤흔드는

           예수의 놀라운 파격적 행동은 수많은 법조문에 얽매여

           진정 보아야 할 토라의 숨은 정신을 보지 못함을 개탄하신 것이다.

곧 머리로 이해하는 토라가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나는 신앙을 지적한 것이다.

 

예수께서 율사들을 혹독하게 비판하신 이유 역시 그들 스스로가

            토라를 삶 안에서 몸으로, 행동으로 살지 못한 채

            다른 이들에게 그것을 멍에로 지웠기 때문이다.

우리가 율법을 겉모양만 꾸미고 입으로만 신앙을 외친다면

           우리 또한 예수의 질책과 도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를 향하던-

           면치 못할 것이다.

 

2. 시나고가

 

유다인의 자녀들은 어릴적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난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 여행을 했다.

부자는 다이아몬드와 황금과 온갖 보석이 들어 있는

           큰 가방을 가지고 있었고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다만 그가 가진 것이라곤 그가 받은 교육뿐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타고 있던 배가 태풍을 만나 침몰하고 말았다.

그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모두 발가벗은 채로 구조되었다.

부자가 가지고 있던 보석을 몽땅 잃어버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두 사람 중 구조받은 뒤에 많이 가진 사람은 어느 쪽이겠는가?

유다인 부모들이 수천년 동안 자녀들에게 거듭해서 가르쳐 온

           그 교육은 무엇일까? 그것은 토라 곧 율법이다.

우리는 자녀의 출세나 성공을 위해 교육을 시키지만,

         유다인은 자녀들이 하느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글을 가르친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것이 있는데,

       유다인은 세 살이 되면 토라를 배워 그것을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

 

그런데 회당(시나고가)은 이 율법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곳이다.

유다 민족을 아예 없애버리려 했던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들이 오늘날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시나고가에서 끊임없이 토라를 익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히틀러가 유다 민족을 학살하면서 제일 먼저 독일에 있는

              수백 개의 회당을 불태우거나 파괴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회당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바빌론 유배지에서 생겼다는 견해다.

사실 유배지에서는 성전 예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회당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회당이 형성된 배경이 그러했기 때문에

           자연히 회당에서는 제사의식보다 말씀의 선포가 더 중요시되었다.

모든 회당에는 구약의 두루마리 성경이 특별한 궤 안에 보관되었으며

        회당은 토라가 중심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가르침과 배움의 장소이기도 했다.

경건한 유다인들은 매일 회당을 방문하였으며 랍비들은 회당에서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매우 기쁘게 생각했고,

           모든 유다인들은 안식일과 절기 때에 회당을 방문하였다.

 

회당에서 진행되는 예식의 순서

       먼저 회중이 일제히 예루살렘을 향해 일어서서 기도드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다음은 예배의 핵심부분으로 성서를 낭독한다.

유다인들은 3년을 주기로 율법서(모세오경)를 완독할 수 있도록

                 153부분으로 구분하고 있었는데

                 모든 유다인은 예배 때에 앞에 나가서 성서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율법을 낭독한 뒤에 예언서에 대한 해석이 뒤따르며,

           마지막으로 낭독자는 기도를 바치고 축복하는 것으로

           회당 예식은 끝난다.

 

이러한 하느님 말씀 중심의 회당이 신약시대에 와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회당에서 박해를 받기도 하고(마태23,34 ),

          또한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루가 12,11 참조),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마르 13,9 참조) 장소로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나고가는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

           유다교의 명맥을 이어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게 된다.

이처럼 시나고가는 시대에 따라 다소 변화의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주님의 말씀처럼 하늘과 땅이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회당 안에 있는 말씀, 곧 토라는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마태 5,18 참조).

왜냐하면 말씀이 사람이 되셨고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는 그 말씀의 힘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3. 랍비

 

유다교 가르침에 따르면 만일 자기 아버지와 랍비가

          한꺼번에 해적에게 붙잡혀 노예시장으로 팔려갔는데

          돈이 한 사람을 구할 정도밖에 없을 때는 랍비를 먼저 구해야 한다.

아버지는 자식을 이 세상에 데려왔을 뿐이지만

             랍비는 그를 영원한 세계로 인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랍비는 유다교의 살아있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민족들은 그들의 상징으로 깃발‧건물‧산천경개같이

              물질적으로 빼어난 것을 선택하지만, 유다인은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랍비들을 자기 민족의 상징으로 삼는다.

 

랍비(rabbi)란 말은 ‘나의 선생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것은 율법학자와 학식있는 사람의 명칭이었으며

       예수께서도 이 호칭으로 불려졌다.

사제의 신분이 출신 가문에 따라 결정되는 것과는 달리

           랍비는 오랜 기간 공부한 후에야

           비로소 랍비라는 호칭을 얻을 수 있었다.

유능한 랍비 밑에서 율법을 배우는 것은

          자녀를 둔 유다인 부모의 가장 큰 소망 가운데 하나다.

독실한 유다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철저한 종교교육을 받은

          사도 바오로도 율법을 깊이 연구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가서 당대의 석학 가믈리엘 랍비 밑에서

          교육을 받았다(사도 22,3).

 

랍비는 율법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민사 사건과 형사 사건까지도 판결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유다인은 돈과 재산문제로 동족끼리 다툼이 일어났을 때

                 법정에 소송을 걸기보다는 양쪽이 함께 랍비에게 찾아가서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랍비는 그들 사이의 분쟁을 조정해 주어야 한다.

 

예수 시대에 이르러 율법학자들의 권위는 대단했는데,

        그들이 지나갈 때는 작업 중에 있는 노동자를 제외한 남자들은

        모두 일어나서 인사를 해야 했다.

랍비에 대한 이와같은 예의는 오늘날에도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유다인 사회에서 가장 덕망있고 존경받던 랍비도

          예수에게서 신랄한 비판을 받는다.

곧 “너희 같은 위선자”, “위선과 불법이 가득한 자”, “뱀 같은 자”,

     “독사의 족속들”이라는 혹독한 질책을 받는다(마태 23,23 이하 참조).

그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오직 말뿐이고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마태 23,1-5).

예수 자신도 당시 사회 속에서 ‘랍비’라고 불리었지만

        그런 율법학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분은 말씀과 행위가 일치하는 분이었다.

 

주님은 우리 모두가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원하신다.

입으로만 외치는 신앙이 아니라

              구체적 행위가 뒤따르는 신앙을 원하신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이다(야고 2,17).

 

                         <유다인으로 오신 예수, 김지영, 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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