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7-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오늘의 묵상
고해소에 앉아서 누군가의 고백을 들을 때면 저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평소에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을 죄라고 생각하여 깊이 성찰하고 용서를 청하기 때문입니다.
고해 사제로서 그런 이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그래서 참 많이 부끄럽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 시대에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이유는
율법대로 살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위선자라고 꾸짖으십니다(마태 23,1-36 참조).
율법에 적힌 규정들을 정확히 지킬 뿐 그들의 마음과 생각에는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율법을 지키면서는 살아갑니다.
자신들이 가진 삶의 의향과 의도와는 별개로 하느님의 법에 충실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노력이라도 하고 있을까요?
예수님께 위선자라는 말이라도 들어 볼 정도로 하느님의 법에 따라 살아가고 있나요?
자신의 편의에 따라 하느님의 법과 기준의 범위를 넓혔다 좁혔다 하지는 않는가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합리화하고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지는 않나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 율법을 폐지하며 살아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최소한 위선자라고 불리는 그 사람들만큼이라도 하느님의 법을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그 노력에 못 미치는 자신을 보며 부끄러워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그래야만 한 번이라도 더 하느님의 법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