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3-25
13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14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16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7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18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23 파스카 축제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분께서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믿었다.
2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25 그분께는 사람에 관하여 누가 증언해 드릴 필요가 없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
오늘의 묵상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성당을 찾았습니다. 머리는 복잡하고 책을 봐도 눈에 들어올 것 같지 않아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성당을 찾게 된 것입니다.
무엇을 청하지도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앉아 제대 뒤에 걸려 있는 십자가만 바라보았습니다.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요? 시계를 보니 네 시간이나 흘러 있었습니다.
우리는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하고자 성당을 찾습니다.
때로는 위로받고,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성당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아니면 행복과 즐거움을 얻고자 성당을 찾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그런 곳입니다. 하느님을 만나 위로받고 평화를 얻으며, 하느님과 대화하면서 바라고 청하고 두드리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만나는 장소가 성전만이 아닌 당신의 ‘몸’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을 체험하기 전의 제자들처럼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활을 체험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예수님의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당신의 몸을 제자들에게 내어 주십니다.
빵으로, 포도주로 당신의 사랑과 희생을 그들에게 전해 주십니다.
바로 성체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과 만날 수 있습니다.
성체가 바로 성전이며, 하느님과 만나는 곳이며, 하느님의 위로와 평화, 행복과 즐거움이 함께하는 곳입니다.
그 성체를 우리가 모십니다. 그 성체를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십니다.
우리 모두, 또 우리 각자가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집이 됩니다.
여러분은 성체를 모시고 하느님의 집이 된 사람, 눈앞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을 바라보며 하느님을 만납니까? 그 사람의 목소리와 행동이 어쩌면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위로와 평화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16-17).
(최종훈 토마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