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3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4─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11,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오늘의 묵상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이사야서의 말씀은 놀랍고 두렵습니다.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며 속죄하고 화해하는 것이 중요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언자를 통하여 전해지는 이 말씀은 청천벽력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선포합니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제물을 바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몸과 마음과 생각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제물을 바치는 것은 속죄하고 화해한 것을 보여 주는 행동입니다.
그보다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이고 화해입니다.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비슷한 의미로 들립니다.
다른 누구보다 먼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요구입니다.
사람 간의 관계에 얽매여 있고 그 관계 안에서만 나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참된 자신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 관계를 무시하고 무조건 벗어나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하느님 앞에 있는 자신만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이웃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을 평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언자를, 의인을 그리고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진정한 평화가 시작됩니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깨끗이 하라는 말씀처럼,
자신과 예수님의 관계를 통하여 이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평화를 위한 길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