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편 외로운 새처럼 되었다 (8절).
102편 : 각기 다른 세 부분을 조합한 개인 탄원시편,
첫째부분(2-12)에서 작가는 매우 병약하고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은 사람처럼 기도한다.
둘째부분에서 그는 시온의 회복을 위해서(13-18), 또 유배된 백성들을 위해서(19-23) 기도한다.
셋째부분은 하느님의 변함없는 영원성과 비교할 때,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덧없는가에 대한 묵상이다(24-29).
1. 가련한 이의 기도
1 [낙담하여 주님 앞에 근심을 쏟아 붓는 가련한 이의 기도]
2 주님, 제 기도를 들으소서. 제 부르짖음이 당신께 다다르게 하소서.
3 제 곤경의 날에 당신 얼굴을 제게서 감추지 마소서.
제게 당신의 귀를 기울이소서. 제가 부르짖는 날 어서 대답하소서.
4 저의 세월 연기 속에 스러져 가고
저의 뼈들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습니다.
5 음식을 먹는 것도 저는 잊어 제 마음 풀처럼 베어져 메말라 가고
6 탄식 소리로 제 뼈가 살가죽에 붙었습니다.
7 저는 광야의 까마귀와 같아지고 폐허의 부엉이처럼 되었습니다.
8 저는 잠 못 이루어 지붕 위의 외로운 새처럼 되었습니다.
9 온종일 원수들이 저를 모욕하고
미친 듯 제게 날뛰는 자들이 저를 저주합니다.
10 저는 재를 빵처럼 먹고 마실 것에 제 눈물을 섞으니
11 당신의 분노와 진노 때문이며
당신께서 저를 들어 내던지신 까닭입니다.
12 저의 세월 기울어 가는 그림자 같고 저는 풀처럼 메말라 갑니다.
2. 시온과 유배된 백성들을 위한 기도
13 그러나 주님, 당신께서는 영원히 좌정하여 계시고
당신에 대한 기억은 대대에 이릅니다.
14 당신께서는 일어나시어 시온을 가엾이 여기시리니
그에게 자비를 베푸실 때며 정하신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5 정녕 당신의 종들은 시온의 돌들을 좋아하고 그 흙을 가여워합니다.
16 민족들이 주님의 이름을,
세상 모든 임금들이 당신의 영광을 경외하리이다.
17 주님께서 시온을 세우시고 당신 영광 속에 나타나시어
18 헐벗은 이들의 기도에 몸을 돌리시고
그들의 기도를 업신여기지 않으시리라.
19 오는 세대를 위하여 이것이 글로 쓰여져
다시 창조될 백성이 주님을 찬양하리라.
20 주님께서 드높은 당신 성소에서 내려다보시고 하늘에서 땅을 굽어보시리니
21 포로의 신음을 들으시고
죽음에 붙여진 이들을 풀어 주시기 위함이며
22 시온에서 주님의 이름을, 예루살렘에서 그 찬양을 전하기 위함이네,
23 백성들과 나라들이 함께 주님을 섬기러 모여들 때에.
3. 덧없는 인생
24 그분께서 내 힘을 도중에 꺾으시고 내 세월을 짧게 하시어
25 내가 아뢰었네. ?저의 하느님 제 생의 한가운데에서
저를 잡아채지 마소서. 당신의 햇수는 대대로 이어집니다.
26 예전에 당신께서는 땅을 세우셨습니다. 하늘도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
27 그것들은 사라져 가도 당신께서는 그대로 계십니다.
그것들은 다 옷처럼 닳아 없어집니다.
당신께서 그것들을 옷가지처럼 바꾸시니 그것들은 지나가 버립니다.
28 그러나 당신은 언제나 같으신 분 당신의 햇수는 끝이 없습니다.
29 당신 종들의 자손은 편안히 살아가고
그들의 후손은 당신 앞에 굳게 서 있으리이다.?
102편 :
시인은 하느님께 기도를 들어 달라고 간구하며,
지금 자신이 얼마나 큰 고통 가운데 있는지 말하고 있다(102,1-12).
이와 같은 표현들은 지금 시인이 당하고 있는 고통은 단순히 질병과 같은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고 원수들로부터 끊임없이 받는 시달림과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여 갖게 된 고독함 등임을 말해 준다.
그는 이런 고통들로 인하여 지금 몸과 마음이 모두 지처 있었다.
시인은 고통 중에 자신을 돌아보며 이와 같은 고통이
주님의 분노와 진노로 인하여 왔음을 말하고 있다(102,11).”
그래서 그는 하느님께 자신을 돌보아 주시기를 기도한 것이다.
“주님, 제 기도를 들으소서. 제 부르짖음이 당신께 다다르게 하소서.
제 곤경의 날에 당신 얼굴을 제게서 감추지 마소서.
제게 당신의 귀를 기울이소서. 제가 부르짖는 날 어서 대답하소서(102,2-3).”
따라서 이 시편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그들 앞에는 구원의 길이 열려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시인은 잠시 고난의 현실을 뒤로 하고 자신의 눈을 하느님께 향한다.
그는 하느님의 영원하심을 주목했다(102,13-23).
“주님, 당신께서는 영원히 좌정하여 계시고
당신에 대한 기억은 대대에 이릅니다(102,12).
시인이 이처럼 눈을 들어 하느님의 영원하심을 주목하였을 때
그는 자신의 구원이 오직 하느님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가 하느님의 영원하심을 묵상하는 것 자체가
구원이 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묵상하게 될 때 비로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하느님의 영원하심을 주목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주목했다.
“당신께서는 일어나시어 시온을 가엾이 여기시리니
그에게 자비를 베푸실 때며 정하신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102,14).”
여기 “시온”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말하지만, 의미적으로는 하느님의 백성을 말한다.
시인은 하느님께서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런 긍휼하심이 있는 한, 하느님은 결코 자기 백성을
버리시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확신은 시인으로 하여금 지금 위기를 만난 이때야 말로
“당신께서는 일어나시어 시온을 가엾이 여기시리다.”라고 말할 수 있게 했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자기 백성을 가엾이 여기시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시인은 다시 한 번 하느님의 영원하심을 고백하며
자신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손에 있음을 고백하였다(102,27-29).
이처럼 시인에게 하느님이 영원하시다는 것은 창조주로서
그리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분으로서 영원하시다는 의미다.
따라서 시인은 자신의 구원이 오직 영원하신 하느님의 손에 있으며 또한
자신뿐만 아니라 후손들의 장래도 오직 하느님의 손에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