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2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2020. 5/22 복음 묵상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0-23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21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22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23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묵상
해산의 고통은 구약 성경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시간을 상징하는 개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라 완성의 시간이라고 고백하는,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이 완전한 시간이고 종말의 시간임을 기억하는 이들입니다.
고통의 시간이 기쁨의 시간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자리와 나누는 ‘화해’를 통하여 가능합니다.
저마다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각자가 계획하고 결심하는 것에 대한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세상은 어리석게도 자꾸만 내 자신이 ‘나’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듭니다.
‘지금보다 나은 나’, ‘지금보다 멋진 삶’, ‘지금보다 성공한 내일’을 꿈꾸게 하는 거짓 가르침을 세상은 좋아합니다.
서점가에 쌓여 있는 자기 계발서는 이러한 가르침을 더욱 부추기고
사람들이 그런 책을 읽을수록 ‘지금의 나’는 부정되고 제거되어 버립니다.
지금, 이 자리가 어설프고 부족하더라도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부족하면 서로 돕고, 어설프면 서로 챙겨 주는 일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갈수록 종교가 힐링 센터로 변질되어 가는 오늘날,
성당이나 교회가 경쟁에 지친 개인을 위로하는 공간으로만 머물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한 결심과 격려의 자리로만 굳어진다면,
‘지금의 나’는 도대체 어디서 예수님을 만나고 기쁨을 누릴까요?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우리는 지금 ‘완성의 시간’, ‘종말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후회할 어제도, 살아갈 내일도 아닌 지금 이 시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필요합니다.
그 사랑과 존중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생각하고 나 자신을 보듬는 일, 그것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