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2020. 5/9 복음 묵상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7-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을 바로 곁에 두고도 하느님을 모르는 일이 가능할까요?
오늘 복음의 필립보는 예수님을 두고도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께서 한 분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오늘 복음의 필립보를 통하여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길을 가다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 일이나 취미 때문에 또는 우연히 알게 된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한
수많은 지인들, 그들 안에 하느님께서 계시다고 생각하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 봅니다.
요한 복음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주제 가운데 하나는 ‘육화’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대상화된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이 부족하고 못난 인간의 한계가
곧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자리라는 놀라운 발견입니다.
날마다 자신의 부족을 탓하면서 내일만을 향하여 있는 우리의 시선은 그리 복음적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지금 부족하다는 우리의 모습 안에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계시는데,
우리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고 외면하며 더 나은 내일의 자신을 꿈꾸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이런 모습은 자기 부정이자 동시에 하느님에 대한 부정일 수 있습니다.
필립보는 자기가 생각하는 하느님을 우상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자신이 꿈꾸는 내일에 우상 하나를 세워 놓고 그것이 하느님이라 고백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생각나는 사람, 지금 기도를 해 주고 싶은 사람, 지금 마음이 불편한 사람,
그 속에서 당신을 제대로 보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