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브론 : 아브라함과 족장 시대 활동 중심지
헤브론은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으로 약 30㎞ 떨어져 있는 곳으로
'동료' '결합' '친구'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히타이트족으로부터 땅을 사들이면서
구약의 중심지가 됐다.
이곳은 이스라엘 족장 시대의 활동 무대가 되는
구원 역사의 핵심 지역에 속한다.
아브라함은 얼마 동안 이 부근의 상수리나무 아래에 거주했으며,
거기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창세 13,18).
사라는 여기서 죽고, 아브라함은 아내의 묘소로
막펠라 밭에 있는 동굴을 샀다(창세 23,2-20).
이사악과 야곱도 한때 헤브론에 머물렀다.
그리고 사울이 죽은 후 기원전 1000년께 다윗은
헤브론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원로들과 계약을 맺었고,
원로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그 후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돼 7년 6개월을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33년 동안 통치했다.
이처럼 헤브론은 아브라함과 족장들뿐만 아니라 다윗에게도 중요한 곳이다.
헤브론은 물도 풍부하고 거주에 좋은 조건을 갖추어 포도 농사로 유명했다.
가나안 정탐을 하고 왔던 12명의 정찰대는 헤브론 근처의 에스콜 골짜기에서
포도송이와 석류, 무화과를 따다 모세에게 바치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고 보고했다(민수 13,23-27).
헤브론은 현재도 포도의 특산지이며 농산물 거래시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유리세공과 토기, 가죽 제조업이 발달해 팔레스타인 경제의 중심지이다.
성경에서는 헤브론에 이스라엘이 정착하기 이전의
다양한 갈등 상황을 잘 보여준다.
아모리족과 히타이트족(창세 23장)이 살았던 헤브론은
가나안족의 중심 도시였다.
헤브론은 다윗이 그의 왕국을 건설한 곳이면서도 뼈아픈 곳이기도 했다.
그의 아들 압살롬은 헤브론에서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다(2사무 15,1-12).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요르단으로 달아났다.
바빌론 유배 이후 헤브론은 에돔 사람이 점령했지만
유다 마카베아가 탈환했다.
그 후 로마군에 파괴된 헤브론은
천천히 복구되기 시작해 4세기에는 큰 도시가 됐다.
페르시아에 점령됐던 634년에는 전성기를 누렸으며
900년께는 '하느님의 친구인 아브라함의 고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허영엽 신부/성경순례